역설의 티알특이점
얼음님의 'teacher' (18/3/3) 본문
통합과 단결. 대륙을 하나로 묶었던 '위대한 자' 또한 핏값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자금의 힘을 갖고 오는 팔레나트 상인연합도, 이해할 수 없는 공포와 불사의 군대도, 옛 동맹과 용벙대와 폐허의 야만도 모두…… 위대한 자와 그를 수호하는 흑룡 '흉포한 자' 앞에서 하잘 것 없을 뿐이었지만. 그러나 위대하고 위대하며 위대한 자조차도 완벽할 수 없었군요. 통일전쟁에서 자신들의 땅을 잃은 '추방자'들의 원한이 마침내 위대한 자를 절명시키고, 왕과 운명을 같이 하는 흑룡도 존재를 감췄습니다.
계승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네 가문/존재는 왕국의 분열과 붕괴를 막기 위해 뜻을 합쳐 계승자를 차기 왕으로 옹립합니다. 위대한 자의 동생이며, 강력한 계승후보자이기도 한 '고귀한 자'는 아직도 국경에서 불사의 군대와 전쟁 중인 와중에……
'teacher' by 얼음 (시나리오 개요: http://cafe.naver.com/trpgdnd/69382)
PC①, 위대한 자의 다른 자식, 계승자의 누이, '찬란한 자' (구니님)
PC②, 위대한 자가 남긴 무력, 해방된 노예 장군, '구인 모나스' (구몬님)
PC④, 계승자의 조력자이자 분신이자 수호자, 위대한 용, '거룩한 자' (키미님)
with PC③, 위대한 자가 통합의 과정에서도 남긴 것, 추방되지 않은 마법, '현명한 자'
꽁꽁 얼음맛
— 역설 (@paradoxcho) March 3, 2018
궁금해 Teacher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얼스
그
맛 pic.twitter.com/cjiWqEicZh
이 시나리오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랜만의 얼스였습니다! 얼음님의 겁스요. 저는 잊을 만하면 '얼스는 겁스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얼음님의 시나리오 중에서도 최신작인 teacher는 한층 더 정밀해진 시스템으로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얼음님과 각종 행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다음에 세션 한번 같이 하시죠"(마치 식사 한번 하시죠)라고 했는데, 마지막 얼스로부터 몇 년만인지 모르겠네요. 그런 사정이 있어서 민망하기 그지 없었는데 심지어 이 세션 약속은 제가 시작한 게 아니라 구몬님이 시작했었죠. 음 민망… 반복되는 민망…
시나리오 teacher는 겁스 월드북인 '겁스 실피에나'에 등장하는 '로벤힐트'를 배경으로 삼은 실피에나 스핀오브 시나리오라고 합니다. 바다 건너 팔레나트에서 온 상인연합, 장미와 해골의 불사군을 이끌고 다니는 베르톨의 후예 등등 아는 사람은 알아본다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만, 그런 제반지식이 없어도 teacher에서 서사시가 되어가는 연대기의 현장에 있는 감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션이 진행되며 시나리오에 숨겨진 반전요소가 드러나며 받는 충격…은 일체 배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공개된 모든 선택지로 가능한 경우의 수를 가늠하며 선택하는 것. 자신과 타인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으로 국가의 정세는 요동치고 계승자는 특정한 방향을 향해 성장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에픽. 계승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시의 향방을 논의하는 네 신격의 윷놀이였습니다. 네 마리의 형제 용이 있소.
각 PC는 특정한 사람일 수도 있고, 특정한 집단일 수도 있었습니다.
PC①은 동생인 계승자에게 밀려난 왕가의 혈육이었기에 단체보다는 개인 설정이 어울렸던 것인지… 자연스럽게 계승자의 누이,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니 '찬란한 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PC②는 왕이 남긴 무력집단의 대표격인 '구인 모나스'라는 이름을 지닌 장군이 됩니다. 다른 PC들은 도입부에서 '아니 저거 괜찮은데?'의 과정을 거쳐서 전부 '○○한 자'라는 칭호를 붙였지만 홀로 마지막까지 구-몬-인 그대로 남게 됩니다.
제가 맡은 PC③은, '위대한 자의 정복 전쟁에서 추방된 자들'의 후예 중 하나지만, 강력한 마법사용자의 가문이었기에 축출되지 않고 남았다는 설정이 붙어 있었죠. 그래서 어쩐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가문 전체를 PC로 (이름하여 마기카의 공작이자 로기아의 백작) 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대표, 가주라거나 원로원이라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마법적 가문이라는 느낌을 종잡을 수 없는 다채로운 아이덴티티로 나타낼까 싶었습니다.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도입부에서 계승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리주의자-귀족 집단-들과, 계승자를 비호하는 기존 세력-섭정인 PC①-, 양측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듯이 성벽에 서서 양군세를 바라보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얼음님은 PC③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해설과 함께 실감나는 시나리오 도입을 이런 구도로 시작을 하셨겠지요. 그렇게 그 캐릭터로 죽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다들(하나만 빼고) '○○한 자'였으니 더 좋았지요. 그리하여 나는 현명한 자!
단체로서 하나의 캐릭터를 다루지 않게 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유감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계승자가 유아기-유년기-성장기-성숙기를 거치는 동안이 굉장히 긴 시간이 아니었으니, 굳이 캐릭터를 바꿔야 할 당위성도 없었고, 바꾸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굉장히 긴 시간… 긴 시간… 저는 이 한줄기 생각이 저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C④는, 오롯이 홀로인 용. 선대인 위대한 자처럼, 이번 계승자 또한 핏줄에 흐르는 용의 힘 덕에 갓난아이 때부터 계승자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의 힘의 구현… 계승자의 운명공동체로 현현한 용. PC④는 그 드래곤, 그리고 그가 키워낼 세력입니다. (키미님: "저는 거룩한 존재! 백룡 키즈나!")
로벤힐트의 왕의 사후, 네 사람 혹은 네 세력은 곧장 왕의 아들인 계승자를 다음 왕으로 추대합니다. 아직 옹알거리는 아이지만 용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세계에서의)명분은 충분했지요. 다만 한 가지 문제에서 모든 문제가 생겨납니다. 왕, 위대한 자의 동생인 '고귀한 자'.
'고귀한 자'는 현재 국경에서 불사의 군대를 막고 있습니다. 그는 계승자와, 이미 죽고 없는 왕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용의 힘을 가진 자입니다. 드래곤은 한 번에 하나만이 모습을 드러내기에, 그는 위대한 자에게 밀려 용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력한 카리스마, 재능, 경험, 명분, 세력이 있고, 왕이 죽은 지금 그는 계승권을 주장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PC 넷은 그런 걸 무시하고 바로 계승자를 내세워 왕궁을 차지한 셈입니다. 고귀한 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에게는 반역자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용이 한 번에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자면 고귀한 자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계승자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켜 왕성으로 쳐들어 왔고, 그것이 제0장, 이 세션의 도입이자 이 시나리오에서 가능한 행동과 판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이었습니다. 계승자의 혈육 PC① 찬란한 자가 지휘하며, 무력집단의 수장 PC② 구인 모나스가 돌격하고, PC③ 현명한 자가 마법으로 지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몰렸을 때, 하늘에서 드래곤 PC④ 거룩한 자가 내려와 귀족의 반란을 종식시킵니다. 사실 주사위가 망해서 귀족 반란군 조무래기가 용에게 저항했습니다
겁스의 "3d6 굴려서 목표치 이하면 성공. 주사위가 낮을수록 좋음"을 극한으로 압축해서 자기화한 것으로 얼스는 독보적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말고도, 이 시나리오에서 특기할 점은 '스포일러'라는 게 없다는 거죠. 커다란 흐름, 모든 선택지, 그로 인한 가능성은 전부 공개됩니다. 남은 것은 선택뿐. 시나리오에서 벌어질 이벤트를 전부 예고하고, 우리의 로벤힐트 연대기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마스터가 예고하는 위기는 세 번.
반란을 일으켰던 귀족 분리주의자들이 비록 휴전을 청했지만, 다시 마각을 드러낼 겁니다. 그들을 온전히 제압해야 계승자를 지키고 국내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위기.
과거 통합의 과정-전쟁-에서 패배해 땅을 빼앗기고 은둔한 마법사용자들이 있습니다. 그림자 숲을 본거지로 삼아 암살술과 마법을 익히며 원한을 태우던 그들이, 바로 위대한 자마저 암살해버린 추방자들입니다. 그들이 계승자마저 암살하려 할 겁니다. 그게 두 번째 위기.
죽음에서 돌아온 불사의 군대, 그리고 국경에서 그들을 막고 있는 고귀한 자와 그의 군대.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그 둘은 똑같습니다. 결국 왕성의 계승자를 위협하게 될 거라는 점이요. 둘 중 승리한 쪽이 왕성으로 몰려야 계승자를 죽일 겁니다. 그게 세 번째 위기.
그리고 사실, 마지막 위기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집니다. 왕성을 둘러싸고 여러 세력이 각자의 이득을 위해 견제하고 있고, 계승자를 옹립한 네 PC는 각자 어느 세력의 어느 면과 접촉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팔레나트 상인연합, 베르톨의 후예 장미와 해골, 그림자 숲의 추방자들, 고귀한 자의 원정대, 돈에 팔고 팔리는 용병대, 왕국의 옛 동맹들, 마법협회, 추방자와 이주민들의 갈등으로 긴장된 버려진 땅……
그리고 여기서 간단하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얼음식 시스템의 진수가 펼쳐집니다. 각 세력마다 각기 다른 면모가 다섯 개씩 있습니다. 8개 세력, 5개 면모, 총 40개. PC는 한 번의 행동으로 그것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상인연합의 군대를 산다? 군대+1. 용병을 산다? 군대+1. 언데드 군대와 계약한다? 군대+1. 상인연합에게 특정한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그들을 같은 편으로 만든다? 영향력+1. 옛 동맹과의 피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군사전술력+1. 언데드의 사특한 거짓의 권능을 빌어 계승자를 가깝게 만든다? 총애+1.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총애+1. 만약 하나의 세력의 선택지 과반수(즉 5개 중 3개)를 선점하면? 이벤트 발생.
이런 식으로 40개의 선택지는 간단한 데이터로 환원되어 PC를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왕국의 이야기를 전진시킵니다.
각 PC에게는 영향력/군사력/총애/군대(+군대의 전투력) 수치가 주어집니다. 이 수치로 겨루기 굴림을 하기도 하고, 굴림 없이 단지 높은 순서대로 보너스가 주어지기도 하죠. PC가 위기상황이 닥쳐오기 전에 열심히 접촉하게 될 40개 면모는, 이런 수치들을 영구적/일시적으로 증가시켜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수치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캐릭터의 개성에 대해 만들고, 소개하고, 판정법과 시스템을 이해하도록 튜토리얼까지 대략 한 시간 남짓 걸렸는데, 그 후 모두가 직감했습니다. 자신만의 승리의 길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지점이 짜릿하면서도 설명하기가 너무나 힘든…… 아 그냥 4명 모은 다음 무작정 얼음님 붙잡고 세션 잡으십쇼 이건 얼스라고ㅜㅜ 얼스로다ㅠㅠ
저는 먼저 드래곤, 키미님의 선호 선택지를 파악했습니다. "뭐하실 거예요?" "장미와 해골 하려고요." 베르톨의 후예, 사령술사인 그들과 접촉하는 건 위험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을 선점하면 보유할 수 있는 군대의 상한이 늘어납니다. 저도 그걸 노렸지만 포기했습니다.
재미있게도, 그저 수하를 늘이고 싶었던 키미님의 선택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벌레 얼굴을 한 이상한 사도들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백룡의 밝은 빛에 어쩐지 어두운 기운이 끼는데… 거부할 수 없다! (키미님: 아 역설님 자꾸 이상한 벌레 흉내 그만해)
어차피 영향력과 총애가 가장 높은 건 PC①, 계승자의 보호자일지 라이벌일지 모를 찬란한 자가 가장 먼저 행동합니다.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공격력을 키워가는데… 다음으로 무력집단, 구인 모나스의 선택지가 영 꺼림칙합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슬금슬금 늘리더니 첫턴부터 PC①을 누르고 왕국의 최고 실세… 비선 실세가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제 예감대로 구몬님의 PC②는 초중반 이후 줄곧 선턴을 가져가며 데이터적으로도 서술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구몬: 그리고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구인 모나스여, 구인 모나스여!"
얼음: 위대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구인 모나스의 곁에 모여들겠군요. 왕의 자식 찬란한 자가 있지만…
구니: (불만)
구몬: '구인 모나스여, 구인 모나스여!'
키미: (제발)
구몬: 그렇게 저는 옛 동맹의 조력을 받고, 영향력이 1 증가합니다.
역설: (아악)
무서운 게임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구몬님(의 무력집단)은 차근차근 왕실의 외척에게 손을 뻗고, 내전이 일어나는 땅에 가장 먼저 구호의 손을 뻗어 '위대한 자는 말씀하셨도다!' 계속해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구몬: 군대가 늘어났군요. 음. 하나는 영광군.
얼음: "영광! 영광!"
구니: (불만)
구몬: 또 하나는 구원대.
얼음: "구원! 구원!"
키미: (제발)
구몬: 그리고 마지막 구세군.
얼음: "위대한 자의 구인 모나스가 세상을 구할 것이다!"
역설: (아악)
아. 그렇지만 구몬님은 조금 억울하셨을 겁니다. 그저 게임을 승리로 이끌고 싶으셨을 텐데 한수 한수 온갖 의심을 사다니. 특히 그 의심의 진원지는 바로 저. 아마 구몬님에게 그때의 저는 역설이 아니라 의심역귀가 아니었을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크… 크큭…
하지만 사실 제 의심은 항상 타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구몬님이 접촉한 세력은, 누군가가 과반수 접촉을 달성하는 순간, 그 PC를 제외한 다른 모든 PC의 영향력을 깎아버리거나, 군대를 감소시키거나 하는 특수 능력이 붙어 있던 겁니다! 어쩌다보니라고? 아니야! 의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구몬님이 우리 모두를 짓눌러버리고 비선실세가 되어버릴 거야! 심지어 연출도 이상한 전우회 할아버지들을 몰고 다니는 식이라구! 원래는 PC① 찬란한 자가 수양대군이 될 줄 알았는데, 정신차려보니 비선실세 구인 모나스가 수양대군을 계승?! 아앗 그러고보니 왕의 동생 고귀한 자야말로 수양대군의 역할이 아닌가? 으악 키미드래곤님 수양이가 셋이에요!
……이런 근심걱정에 휩싸여, 저는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던 거지요.
구니: 저 총애점 사용하겠습니다. 모두에게… +1…
얼음: 좋아요. 인격의 이름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구니: 음. 뭘로 하지. 혹시 위대한 자의 가문 이름이 뭔가요?
얼음: 뭘로 하시겠어요?
구니: (고민)
(간식으로 둔 화이트하임이 보인다)
구니: 화이트하임으로 하죠.
키미: (제발)
구니: 그리고 인격의 이름은 '화이트하임의 군주'!
키미: (으으)
얼음: 그렇다면, 출정식을 하는 여러분에게 연설하는 계승자는 뭔가 더 강인해보입니다.
키미: (설마)
얼음: "화이트하임의 군주에게 승리를 가져와라!"
키미: (아악)
그러고보니 우리 중에 가장 수양대군에 가까운 자가 있었지…
'총애점'은, 군주의 아래로 내려오는 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죠. 군주가 신하를 바라볼 때, 신하도 군주를 바라봅니다. 심지어 PC① 찬란한 자는 계승자의 누이. 다른 사람보다 총애의 우위를 가진 채 시작했었죠. 그리고 총애점으로 군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총애점을 사용하면… 계승자에게 인격을 만들 수 있는데, 마비노기 타이틀 만드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것보다는 데이터적 영향은 단순하지만… 서술어의 파괴력이 굉장했습니다. 화이트하임의 군주… 화이트하임의 군주…
계승자의 분신, 드래곤 키미님은 그 이름이 불릴 때마다 위장을 움켜쥐었습니다. 단순히 선택된 사항에 +1 보너스를 받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데이터지만 이것에 계승자의 '인격'이라는 이름이 붙자 거부할 수 없는 연출적 제약이 되어버리더군요. 참지 못한 키미님은 자신의 총애점을 탈탈 털어서 그것을 '백룡의 군주'라는 인격으로 덮어씌어버립니다. 덮어씌우기? 그렇습니다! 총애를 '낭비'하는 방식이지만, 보기 싫은 인격은 저리 치워버려야 하죠.
무서운 점은, 새로 생긴 '백룡의 군주'는 기존에 있던 '화이트하임의 군주'와는 달리 모두에게 보너스를 주는 게 아니라 PC④ 거룩한 자에게만 보너스를 주는 편애적인 능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별로 반발심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 더 무서웠습니다! 계승자… 이제 정상이 되었구나ㅠㅠ(?
하지만 이것은 모두의 승리가 약간이나마 지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총애를 써서 계승자를 성장시키고, 성장한 계승자가 모두에게 이로운 효과를 주는 것인데, 계승자의 기존 인격을 고친다는 것은 그만큼 총애의 낭비니까요. 그런 와중에 구몬님의 구인 모나스는… 계승자에게 노인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온갖 충언을 올린다는 연출과 함께… '강한 애국심'이라는 인격을 만들어냅니다. 아악 (키미님: 괜찮아 나 총애 많아)(역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악)
고통… 고통…!
역설: 이렇게 되면 저는 모두를 위해(총애+1) 고귀한 목표(영향+1)를 달성할 수밖에 없군요… 이대로 있다간 모두 언데드에게 죽거나 고귀한 자에게 숙청당할 거야!
얼음: 어라?
역설: ㅇㅂㅇ??
얼음: 역설님의 현명한 자가… 원정대에게 세 번째 접촉을 한 순간.
역설: ㅇㅁㅇ?!
얼음: 현명한 자를 제외한 모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역설: ㅇㅅㅇ!!
얼음: 현명한 자의 순위가 1위로 상승!
역설: (계획대로)
그렇습니다. 왕국을 위해 온몸을 다 바쳐 헌신을 했더니 어느새 최고의 영향력, 최상의 총애, 최강의 군사를 갖추고 있던 겁니다. 하하하 이것이 마기카의 공작이자 로기아의 백작!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뒤트는 마법의 힘! 필생즉사 필사즉생! 권력을 멀리하니 권력이 내 것이다!
권력싸움에 취한 수양대군 원 투 쓰리(넘)가 치고 받고 하는 동안 진-정-한- 충신의 면모를 보여, 추방자의 출신임에도 왕성 내에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는 이 간단한 연출은, 사실은 온갖 고통의 산물이었습니다. 이것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세 가지 고통의 컴비네이션.
아쉽게도 제3장, 왕의 동생 혹은 불사군의 귀환은 매우 급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없었거든요. 곧 3장의 클라이맥스 후, 진정한 클라이맥스까지 감안하면 아무리 급히 진행해도 모자랐죠. 그리고 그래서인지 다들 욕망을 숨기지 않고 마구 분출하며 거침없는 행동으로 다른 PC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도 하고, 일시적 영향력, 일시적 군사력 등등 이전 장에서라면 거들떠도 안 봤을 선택지를 고르고… 최종전으로 향합니다.
그러고보니 수양대군이 셋이라고 했었죠. 이 시나리오의 결말에서 眞수양대군… 아니 고귀한 자의 선택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실은 그의 선택이 아닐지도 모르죠. 이 게임에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플레이어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PC와 그 세력, 혹은 그것을 주시하는 다른 세력들입니다. 저는 제 PC의 영향력을 올리는 대신 다른 PC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행동을 했지만, 그것은 이야기 내부에서 단순하게 구현되지 않습니다. 영향력을 올리고, 내리는 수치적인 설명은 플레이어를 위한 것. 이야기의 내부에서는 위대한 왕의 사후 일어나고 있는 궁정 내의 암투, 선수, 협력, 정치가 벌어지고 있었지요.
고귀한 자, 혹은 불사의 군대 중 승리한 쪽은 무조건 계승자와 네 PC와 싸우게 될 운명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 고귀한 자는 실은 고귀하지 못한 자였을까요? 아니면 계승자가 너무나 저열한 탓에 고귀한 결심을 하게 된 걸까요? 아니면 계승자가 우리 네 PC에게 휘둘렸듯이, 고귀한 자도 혼자만의 선택이 구현된 존재가 아니게 된 걸까요.
우리는 고귀한 자가 불사의 군대에게 패배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매 챕터, 각 장의 끝에, PC들은 국경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습니다. 그 군대는 고귀한 자의 훈련을 받아 강해지지만, 동시에 고귀한 자의 군대도 강해지죠. 그리고 국경에 아무 군대도 파견하지 않는다면, 고귀한 자는 불사의 군대에게 패배합니다. 즉 이것은 플레이어의 냉정한 설계와, 계승자의 혈연을 직접 죽일 것인지 간접적으로 죽일 것인지를 선택하는 캐릭터의 고뇌가 섞인 선택.
고귀한 자의 군대는 PC의 선택에 따라 강해질 수도, 무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를 간신히 살리는 정도로 군대를 보내고, 조카를 죽이러 온 고귀한 자를 상대할 것인가? 아니면 불사의 군대가 그의 세력을 유린하도록 둔 다음, 몰려오는 언데드를 무찌르는 영웅이 될 것인가?
(역설: 불사의 군대는 기능치 9 군대 열둘이란 말이지… 고귀한 자는 군대 다섯에 우리가 신병을 보낼 때마다 기능치 10 군대가 생긴다… 각 장마다 둘 보내면 대충 비슷한 밸런스가 되겠는데?)
(현명한 자: 고귀한 자의 원정대는 이제 불사자와의 전쟁의 대가를 받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차 있을 겁니다. 그들이 돌아오게 두면 피에 굶주린 늑대를 양의 우리에 풀어두는 셈이 되는 거요!)
……아마 처절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1장과 2장을 겪으며 계승자가 유아에서 성인이 되는 기간을 간접 체험한 PC들은 가혹한 결단을 신속하게 내립니다. 얼음님 주사위 때문에 기능치 낮은 쪽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해
우리는 기능치 10의 군대 열하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기능치 9의 군대 열둘을 상대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즉… 우리는 왕국의 미래를 위해 고귀한 자를 버렸습니다. 불사의 군대는 고귀한 자의 군대를 몰살하고 국경으로 몰려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백룡의 군주를 따르는 이들은 '현명하게도'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죠.
네 PC는, 살아 남은 불사의 군대를 제압하고 마침내 왕성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teacher 종료.
얼음: 그렇게, 백룡의 군주 - 침착함 - 강한 애국심 -의 계승자는 모든 위기를 넘겼습니다
역설: 으윽 강한 애국심
키미: 총애로 지워요 ㅎㅎㅎㅎ
역설: 앗 내 총애가 제일 높다?!
얼음: 그렇네요. 역설님의 현명한 자!
역설: (신남)
얼음: 아참, 혹시 제3의 길(배반) 가실 분 있나요? 총애 순으로 대답해주세요
역설: 에이 설마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구니: 저저 합니다! 찬란한 자!
역설: (아악 이 빛바랜 자여!)
구니: 저 처음부터 하고 싶었어요. 찬란한 자라는 이름은 자기 빛에 눈이 먼다는 걸 의미하지!
역설: (고통 고통 고통 고통)
얼음: 시간 문제로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상상한 대로입니다
역설: (고통이라는 소리군)
가르침은 끝이 없고 고통도 끝이 없도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제3의 길'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우리는 관측하지 못했지만… 권력과 무력과 마법, 그리고 위대한 용의 수호는 역사를 계속 유장하게 흐르게 했을 겁니다.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기도 하고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기도 하는 존재지만, 다만 가르침은 영원하니까요.
— 역설 (@paradoxcho) March 3, 2018
😢Teacher! #TRPG
teacher. 정말로 종료!
ㅠㅠ얼스의 스는 겁스의 스가 아니라 카타르시스의 스! 그런 말이 절로 나오는 유장한 세션이었습니다. 8시간 세션은 긴 것도 같지만 사람의 성장과 비교해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죠.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연대기의 한 장을 장식하는 신화적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협력과 견제, 그리고 아직 어린 왕이 성장하면서 커지는 갈등, 그럼에도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인 공동의 적… 그런 것들이 아주 아주 간략한 규칙만으로도 구성되어 있는데, 그 규칙의 성긴 그물망이 움직이는 모양이 너무나 예지하기 쉬우면서도 예측하기는 어려워서 고뇌하고 집중하게 되는. 그런 시나리오였어요.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순간순간 부딪치고, 최후의 승리를 위해 가끔은 도박같은 선택을 합니다. 3d6에 +1을 받을 것인지? 재굴림 권한을 확보해둘 것인지? 당장 견제를 할 것인지? 일단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얼음님이 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그 아이디어의 단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기억납니다. 계승자라는 중심인물을 두고, 정치물을 대체 어떻게 구현하게 될지, 기대와 함께 가능은 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는데 이렇게 구현이 되었네요. 계승자는 PC들이 상호작용하는 빈 공간 가운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이었다니!
세 가지의 위기도, 배반의 가능성(제3의 길)도 모두 시작부터 제시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없는 게임인 까닭은, 세션의 모든 진행은 비밀이 전혀 없는, 단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다른 플레이어의 속내만이 유일한 비밀이고 가장 강력한 비밀이기 때문이죠.
3d6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실은 이제 겁스라기보다는 다른 그 무엇이 되어버린 얼스… 시스템과 상호작용에 대해 궁금해졌다면, 반드시 체험해보세요.
제가 말했듯이,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궤변이지만, 얼스는 정말로 겁스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