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도심 속에 갇히는 것을 선택하면서, 요괴는 전설 속으로 몸을 감췄습니다. 그렇게 인간과 신화 사이에는 인간이 구축한 방벽만큼의 간극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장벽이라는 것은 때로는 그 얇기가 없느니만 못할 때가 있으니, 인간이 스스로 신화의 영역에 몸을 던질 때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지나가던 선비나 지나가던 스님은 원래 없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동경하는 요괴도 다만 환상이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신화는 다만 덧없는 희망이니, 사람은 필사적으로 인류를 구한 자들의 이름을, 지나가던 나그네들의 전설 속에 숨겼습니다.
진실을 탐사하는 무명의 객들은 때때로 인세를 침탈하는 신화를 비껴내기 위해 비인외도의 길을 스스럼없이 걸었으니, 그 길의 이름은 마법이라고도, 의식이라고도, 주술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혹은, 굿이라고도.
-이하, CoC 광인굿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이한 이야기를 다루는 ‘미스터리 특급’의 PD 도영은 막내 작가 신소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 회의인데, 새로운 소재를 갖고 오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소영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모습을 비추지 않고 있습니다.
출중한 외모와 열정을 갖고 있지만 연기력 논란이 있는 배우 미소,
유능한 엘리트이며 심리학과 최면을 이용한 상담에 일가견이 있는 교수 제희,
미스터리 특급의 이전 프로그램이었던 미스터리 극장에서부터 주요게스트였던 수정까지, 모든 게스트가 다 모였는데도 말이지요.
캐릭터는 모두 로릭님이 미리 마련해둔 탐사자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어째서인지 정신력이 평균 이하인 경우가 많긴 했으나…… 원래 탐사자로 활동하고 그러면 이성이 좀 낮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습니다^_ㅠ;; 게다가 크툴루 신화 기능을 주셨다구요! 탐사자 한 사람 한정이었지만.
미리 마련해둔 탐사자라고는 했지만 기본적인 특성치와 직업, 시나리오에 들어가기 위한 개요를 제외하면 기능치부터 백스토리까지는 플레이어가 분배하고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적절한 자유도 정말 좋았어요.
크툴루의 부름 백스토리는 굴려서 만들어도 의미심장하게 해석할 수 있는 빈 자리가 잘 나와서 좋아합니다. 전부 다 굴려버린 김수정 씨는…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이용해 오컬트 전문가로서 이름을 날려 부유해진 셀렙’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쩐지 대개 친절해서 자기도 모르게 사방을 유혹하는 설정이 붙었던 것도 같지만 일단 넘어가고요(머리팍팍)
모인 사람들은 구면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초면에게 자기소개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막내 작가 소영이 급하게 소재를 들고 찾아오는데, 어째 이번 일은 너무나도 딱 맞는 사건이라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평범한 중학생 아이.
이상 증세.
방송국의 어느 높으신 분 인맥을 통해 들어온 사례인데…… 그렇다면 이번 일은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다루는 게 아니라 정말로 ‘무언가를’ 해결하라는 뜻인지?
제보에 의하면 아이는 때로 성격이 바뀌고, 기억이 가끔씩 없어지며, 가위에 눌릴 때가 있고, 열이 오르고는 한다는 겁니다.
제희에게는 괴이한 사건이기에 앞서,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일입니다. 사실 오컬트전문가로 활동하는 수정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격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고 기억이 사라지고는 하는 것은 모종의 스트레스로 인한 게 아닐지, 그렇다면 문제는 부모에게 있는 게 아닌지, 그렇다면 이 일의 결말은 부모와 아이를 화해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닐지. 그러한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다만 어떻게 기이한 일로 포장해서 그럴 듯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줄지, 그것이 문제였을 뿐이죠. 두 전문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미소는 다시 배우로 재기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번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로 불타고 있습니다. PD인 도영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요.
방송 제작, 제작진과 출연진이 섞인 탐사자 구성에서 시나리오집 TTWLB의 forget me not이 떠올랐어요. 그렇지만 광인굿은 그 시나리오와는 다른 방법으로 탐사자 사이를 엮어줍니다. 합리성의 전문가인 제희와 오컬트 전문가인 수정이 대립각인 구도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션에서 그런 흐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들이댔
탐사자는 다만 절망과 불행이 가득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실에 다가가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전진하죠. 예능방송이라는 단어에 숨은 욕망, 그리고 기이한 증세를 보이는 아이라는 불길한 기운이 테이블에 앉은 모두를 얽어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상 증세를 보이는 아이의 이름은 민서. 성산시 주상복합 아파트의 주소를 받은 일행은, 본격적인 방송용 촬영 전에 사전미팅을 하기 위해 민서네 어머니와 약속을 잡습니다. 9월 8일 토요일.
아이의 집에 찾아가던 날은, 어쩐지 날이 궂을 예감이 드는 하늘입니다. 며칠 안으로 때 아닌 장마가 찾아올 예감.
아이의 집을 찾아갔을 때, 수정은 예상과는 다른 집안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낍니다.
심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내모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면…… 이렇게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집일 리는 없을 텐데.
민서네 어머니가 말해주는 간략한 이야기를 듣고, 수정은 제희와 함께, 민서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안녕.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야. 우리 이야기 좀 할래?”
침대에 앉아서 들어온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학생 아이는, 들으며 상상한 것과는 달리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표정은 가라앉아 있었지만요. 민서에게 짐짓 인사만 건네는 척을 하며, 이상한 흔적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정말로 평범한 아이였어요.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이때 두 사람만 들어가서 대화한 이후로, 다시 민서를 만날 때까지 다른 두 사람은 전혀 민서와 소통한 적 없었어요. 그래서 다소 감정적 교류가 어려웠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괴이현상에 시달리는 연약한 아이라구요.
(잠시 후)
리모제희: 왜지?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니야
역설수정: 리모 들어가고 제희 나오세요ㅠㅠ
다만 아이가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 나무조각? 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민서는 외할머니에게서 받았다고 했어요. 민서의 말에서, 아이가 오래 못 본 외할머니를 많이 의지했고, 그래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 거실에서는, 민서의 어머니 서연희 씨에게 도영과 미소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거실에 놓인 강아지 사진은 정말 귀엽고요. 외할머니와는 교류를 끊었다고 하네요. 아니 민서의 외할머니면 연희 씨의 어머니잖아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요.
어린 민서를 맡겼더니 제대로 챙기지도 못해서 큰 사고나 일어나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
숨을 깊게 몰아쉬는 민서 어머니, 연희 씨는 무언가 쌓인 화를 누르고. 탐사자 일행은 민서의 방을 촬영했다는 캠코더를 받습니다. 8시간 분량의 영상이 들어 있는 그것을, 연희 씨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며 재생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대체 무엇이 들어 있기에?
어쩐지 외할머니가 모종의 깊은 것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 법했는데, 누구인지 모르게 ‘우리 어머니!’ 하는 억눌린 소리에 맞장구를 쳐버렸습니다. “무당이었나요?”
이것이 캐릭터가 한 말인지 플레이어가 한 말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민서가 이럴 적 큰 사고가 있었으며, 그것은 민서가 아홉 살, 6년 전 있었던 일. 그 후 민서는 외할머니와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인 연희 씨가 크게 분노해, 연을 끊어버리다시피 했으니까요. 끊어버리다시피? 네, 사실 연희 씨는 민서 외할머니가 2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민서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요. 아이에게 그 사실을 뒤늦게 알려주는 것은 더 큰 충격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무렇지 그런 민감한 것을 제안하느라, 오히려 역성을 듣고 맙니다. 실례를 급히 수습하고, 일행은 다음 미팅 날짜를 기약하고 집을 나섭니다.
탐사자를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급하게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어버린다니까요. 큰일이에요. 큰일. 물론 세계를 구해야 하니까 한시라도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러면 아무리 높은 매혹 수치로도 수습할 수 없게 된다구요. 탐사자 너무 힘들어줍니다.
일행은 방송국 회의실에 돌아와, 8시간 분량의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오늘도 야근 확정이네요. 하지만 불쌍한 막내작가는 퇴근시키고, 의욕에 불타는 넷만이 1.5배속으로 영상을 재생합니다. 아니 2배속. 아니 4배속. 아니 8배속…….
9월 2일. 오전 8시에 시작된 영상은 내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똑같은 모습을 비춰줍니다. 종일, 민서가, 내내, 침대에 앉아서, 몸을 앞뒤로, 앞뒤로, 앞뒤로.
분명히 이 영상은 보면 온전한 인간의 마음이 깎여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뜩한 소름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차라리 끔찍한 영상이 튀어나왔다면 피상적으로 반응했을 텐데. 끊임없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간질간질한, 잡히지 않는, 이상해.
8배속으로도 1시간 남짓. 영상 안의 시각은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로 향하고 있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까딱거리는 민서. 할 말을 잃은 일행들이 급하게 영상의 속도를 원래대로 돌린 것은 3시 55분부터였습니다. 민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니 일으켜 세워지고, 카메라 쪽으로 다가옵니다. 주춤, 주춤.
영상을 다 본 일행은, 그것을 못 봤다는 듯 급하게 대화 주제를 다음 미팅에 대한 것으로 바꿉니다. 제희는 민서와의 짧은 대면에서 봤던, 지금은 돌아가셨다는 외할머니가 남긴 목편에 새겨진 문구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단기로 적힌 날짜 두 개. 1992년 10월 14일. 그리고 올해인 2018년 9월 4일. 그때와 올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댁인, 강원도 삼척의 주소를 들어두길 잘했습니다. 이상한 영상은 끄고, 푹 자고 새벽에 출발하도록 하죠. 그러나 미소 씨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습니다…….
제희에게서 자꾸 나오려고 하는 리모님을 무섭게 하는 장면들이 너무나 재미있었어요(리모님: 확 블락)
9월 10일. 월요일.
일행은 삼척 할머니 댁에 찾아왔지만, 그곳에는 폐가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어느새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일행은 녹슨 철문을 밀고 비가 뚝뚝 떨어지는 지붕 밑 진흙탕에 들어섭니다. 모든 방이 건축자재, 철골, 쓰레기로 채워져 있고, 다만 멀쩡한 방 하나에 들어서니 보이는 것은 잠긴 옷장 하나.
일행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외할머니, 오경숙 (언제부터인가)선생님은 민서에게 무언가 주술적인 조치를 취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옷장에서 나온 것은 호귀(狐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후일 이것을 찾아볼 사람에게 남겼으리라 추측되는 짧은 글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것이 있으리라.”
집의 가축이 자꾸 죽어나가자, 아비는 아들들에게 밤을 새워 감시하라고 일렀다. 첫째 아들은 깊은 밤, 금지옥엽 여동생이 말의 간을 뽑아 먹는 것을 보았다. 사실대로 일렀으나 아비는 아들이 딸을 모함한다 생각해 내쫓았다. 수년이 흐른 뒤, 집을 찾아온 아들은 폐허가 되어 있는 집에 홀로 사는 여동생을 믿지 못했다. 핑계를 대고 급히 집에서 도망치던 아들의 뒤를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추적해왔고, 아들은 거의 잡힐 뻔 했으나…….
그리고 외할머니는 민서를, 혹은 인간을 당부하는 글귀를 더 남겨두셨습니다. 마치 우리가 와서 볼 것을 아는 듯이. 그래서 호귀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요?
귀신이 들려 정신이 나간 사람을 낫게 하는 축귀 의식이 있었다.
원래는 인신공양을 했지만 점차 세습무가 치르는 의식으로 변했으니.
그것이 광인굿.
일행은 폐가에서 더 찾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부슬부슬 오는 비를 피해 차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습니다. 주변에, 생전 외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분이 있다면 뭔가 전언을 더 남기지 않았을까? 수정은 제희와 둘이서 주변 인가를 탐문하러 가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더 없는 듯했습니다. 어느 정도 떨어진 마을 슈퍼를 찾을 때까지 아무도 없었거든요.
어디서 봤나? 하는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슈퍼 주인 할머니에게 말을 살갑게 붙이기 위해 환상의 재력쇼최선을 다하지만, 이 분이 딱히 아는 바가 없다는 것만 알게 됩니다. 정말로 외할머니는 후계를, 혹은 후대를 위한 안배를 더 남기지 않은 건가요? 하릴없이 마실 것만 잔뜩 산 둘은 터덜터덜 차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정말로, 굿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일행들이 당황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가 옵니다. 민서 어머니에게서요.
“민서가 사라졌어요.”
“아침부터 분명히 방에 있었고, 문이 열린 적도 없는데.”
“편지 하나만 남겨져 있었어요.”
“외할머니 만나고 올게요, 라고.”
수도권에서 삼척으로? 이 날씨에? 아이 혼자?
이상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일행은 모두 어느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민서가 이곳으로 올 거라고.
사실 모두가 삼척에 와 있었으니, 민서를 데리고 돌아가겠노라고 안심시키다가 굿에 대한 대화를 무심코 하게 됩니다. 아니, 원래부터 이야기는 하나로 흐르게 되어 있었던 거죠. 외할머니가 남겼던 목걸이에 새겨진 올해 9월 4일도.
혹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민서가 갑자기 이상해졌다거나.
“9월 4일에요? 그 날짜라면.”
사실은, 이미 광인굿을 했던 겁니다. 바로 9월 4일에.
민서 어머니가 그동안 민서를 위해 오만가지를 다 했다는 이야기를, 흘려듣는 게 아니었어요. 우리 방송은 정말, 정말, 정말로 최후의 수단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그 굿을 한 사람이 누구였나요?
니알라로릭 맙소사. 탐사자 미소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은 모 도사에게서 받은 부적이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 도사가, 지난 9월 4일에 광인굿을 했던 도사였습니다.
그러나 민서 어머니는 그 굿이 이뤄지는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도사는 산중턱에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은 모두 멀리 떨어지게 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연희 씨는…… 굿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일해도사는 피칠갑을 한 채 뛰쳐나와서, 웅얼거리는 소리만 주워 담더니 도망쳐버렸던 겁니다. 그 뒤로는 아무 연락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서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리고 빗속에서 민서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민서가 과연 그 민서일까요? 그 민서가 아니라면, 아니 그 민서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이 민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수정은 뛰어와 수건을 덮어줍니다. 괴이현상에 시달리는 연약한 아이라구요222. 외할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어렵게 전해야 했습니다.
수정과 도영은, 정말로 굿을 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하려면 일단 그게 가능한 건지나 알아봐야 한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 합니다. 민서를 제희와 미소에게 맡기고, 잠시 밖으로 나와서, 도사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민서 어머니의 연락을 받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걸면 받겠지요.
“누구시죠?”
당신이 일해도사입니까.
“그런데,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광인굿을 할 수 있나?
"…" -뚝.
도사는 더는 민서에게 상관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어요,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고는 있었던 것인지, 수정의 설득인지 위협인지 모를 말에 결국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 광인굿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노라고. ‘그런 것’이 있는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아이에게서 도망치는 게 좋아.”
그렇게 목숨 잠시 붙여서 무슨 소용이 있지?
“…….”
당신이 한 광인굿, 듣기로는 잘못했던 것 같던데.
“…….”
도와주지.
“…….잘못 했던 게 아니야."
우리는 도사가 광인굿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광인굿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던 거였어요. 도사는 지푸라기로 얽은 허깨비를 쓰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원래는 인신공양이었다고 했던가요.
수정은 고민합니다. 사처낭. 4천왕. 지금 있는 일행도 4명.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런 위험한 일을, 아니 그보다 그런 이상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어줄까?
곧,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제희는 민서에게 퇴행최면으로, 광인굿 당시에 있었던 일을 알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민서를 잠재우고, 당시로 시간을 되감게 합니다.
“무당이, 엄마에게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무엇을 했나요?
“손에, 칼을, 많은 칼을 들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했나요?
“작두 위에 올라갔어요…….”
그리고요?
“…….”
그리고?
“그리고…….”
리모님이 대놓고 스위치를 밟고 있어서 차 밖에 나가 있는다고 선언했던 저와 파르팔라님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 받았습니다. 터진다, 무언가가! 우리 없는 곳에서(중요)!
그리고 니알라로릭은 우리가 팝콘을 뜯지 못하게 했습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인간이 아닌 것처럼 크게 벌린 입 속에는 어둠만이 가득했습니다.
역설: (입 벌림)
리모: 아악 블락할래
역설: (입 다뭄)
일행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삼척에서 성산시로, 일해도사가 불러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급하게요. 호귀가 더 날뛰기 전에요. 민서가 더 버틸 수 없게 되기 전에.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것이 있으리라.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그대로였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어둠 속인 줄 알았는데, 눈을 뜨니 들리는 것은 라디오 소리. “프로야구 우승팀은…….”
아 니알라로릭 맙소사 정말!
너무나 짜릿해서 탐사자보다 플레이어가 벌떡 일어날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리모님은 너무 좋아서(?) 블락할 거 같다고(??) 했다고요.
우리는 정말로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시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의지를 잇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요. 오경숙 선생님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도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것은 아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해야 할 일을 하셨지요.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후대의 사람이, 우리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광인굿 현장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민서를 구하기 위해, 이미 무아지경에 빠진 도사를 도와 각자의 자리에 섰습니다. 허깨비가 아닌 사람을 제물로 삼는 자리예요. 우리는 전부를 쏟아냈습니다…… 전부를요.
다른 사람들이 기력을 얼마나 쏟아냈는지, 수정은 자신이 집어넣으려고 생각했던 것의 8분의 1도 넣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수정은 아직도 모를 겁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호귀는 귀가 아니었어요. 신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어둠으로 파묻어버리는 재앙신. 처음에는 민서가, 다음은 일행이, 다음은 성산시, 다음은 경기도, 다음은 수도권, 다음은 한반도…… 그렇게 모든 것이 어둠에 뒤덮이고 말겠지요.
미쳐버린 사람을 위한 굿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광인굿.
END……
수정은 다시 한번 오경숙 선생님을 만나서, 다시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 찼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튼 똑같은 산, 똑같은 철문. 똑똑똑.
“누구시죠?”
선생님, 저희가 실패하고 말았어요. 이제는 어쩌죠?
“……누구시죠?”
네?
“엄마, 누구야?”
“으응. 손님이란다. 제희랑 들어가 있을래?”
네?
아아.
이곳의 오경숙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주부였고…… 외동딸 서연희가 아니라, 쌍둥이 자매 연희와 제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