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상식을 파괴하고 세상을 재단하는 자. 불멸불사부증불감불구부정. 마도에 입문하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는 세계 전체가 증오하고 부정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세상 전체의 존재부정을, 가늘고 가는 인연의 끈만으로도 비껴내는 것 또한 마법사.
그런 마법사들 중에서도…… 제1계 신참Neopyte, 제2계 이론가Theoricus, 제3계 실천자Practicus, 제4계 철인Philosophus, 제5계 달인Adeptus을 넘어선, 비로소 마도사Magus라고 불리는 제6계에 오른 마법사에게는 몇 겁의 업이 쌓여 있단 말인가?
세계를 뒤엎고 법칙을 다시 쓴다고 할 정도로 강대한 마도의 주인, 제6계제 '검은 신' 고리니시체. 그의 힘이 담긴 마도서가 세상에 풀려났다. 신이라 불릴 정도의 마도가 실린 금서는, 곧 인간愚者의 사회 속에 숨어들어 시공을 뒤틀고 왜곡된 인과를 낳는다. 그리고 조각나는 인과율에 이끌린 마법사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복수할 거야! 복수할 거야!"
비틀린 시공이 비명을 지르는 이야기.
"인간의 마음을 모르시는군요."
인과를 초월하는 마도사가 끝내 초월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함께 있어서 다행이었고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하지만─"
낮도 밤도 아닌 시간의 틈새처럼, 위태한 세계의 이야기.
세계의 황혼이 부숴지는 그 잠깐 사이에 태어난 이야기. 새벽이 찾아온 황혼처럼 흔적도 남지 않은 이야기.
산산조각나는 저녁놀의 이야기.
'환혹의 노스탤지어'
분과회 '검은 신을 위한 Paradox'
PC① 사카피 카이토 / 존재에 앞서 생각하는 구동특이점 : 역설
PC② 쿠니키다 렌 / 재생하는 제80원소 ~메리꾸리웅~ : 뫄이쪙
PC③ 야마나시 히비키 / 지식에 굶주린 연대기 : 녹차파우더
PC④ 아사쿠라 린 / 세계, 그 자체의 분노를 비추어 기억하는 자 : 루루팡
with GM 아본
'환혹의 노스탤지어'의 스포일러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드디어 닿았어 노스탤지어에
'환혹의 노스탤지어'는 원래 시나리오가 아니라 리플레이입니다. 이 포스팅의 첫 이미지가 그 표지인데…… 리플레이만 존재하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리버스 엔지니어링, 시나리오화해서 세션 플레이까지 했다는 말에, 그리고 그 세션의 감동을 도저히 잊지 못한다는 말에 호기심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아본님을 조르고, 조르고, 조르고, 조르고, 살해주문도 쏘고 온갖 구질구질한 집착을 다 뿜어낸 끝에 마침내 열리게 된 환혹의 노스탤지어입니다.
😂😂😂😂
아니 써놓고 보니까 뭔가 절대로 상종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잖아? 그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이 세션이 잡혔는지 제대로 기억이 안 납니다. 시간이 갈수록 약간 거의 매크로처럼 돌렸던 거 같은데 어떻게 이걸 할 수 있었던 거지? 정신차려보니 인원이 잡히고 일정이 잡히더라구요 다시 한번 아본님 감사합니다! 티 알 빛 깔 아 본 님!
"정보생명체 SCP 마도사(Horizon Outsider, Lv.4), 그리고 그의……"
1876년 7월, 메이지, 도쿄.
마법사는 소녀를 만난다.
세션에 대해 쓰기 전에 마기카로기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네요. 모험기획국의 이런저런 룰들을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파고 들었다고 할 만한 룰은 그나마 시노비가미 인세인 정도밖에 없는데, 이 둘은 보통 단발성으로 끝나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되잖아요? 강렬한 시나리오를 많이 만나기는 했지만, 대개 시나리오의 구도와 장치가 강렬했던 거였고 그 바깥으로 생각을 뻗지는 않았었죠. 테마가 테마다 보니까 의심과 사투와 경쟁과 생존에 무게추가 쏠리기도 했고요. 룰 또한 그런 사고방식으로 기울어지도록 지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보니 테마와 룰을 이렇게나 정합시키다니 역시 카와시마 천재… 질투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익숙했던 룰과는 다르게 마기카로기아는 특성상 다른 사람을 의심할 여지가 훨씬 적은, 아니 그냥 의심하지 않는 것을 기본형으로 둔 룰이라는 인상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걸 버리겠다고?' 하는 의아함이 생기는 룰이었는데… 직접 해본 뒤에야, 마도서와 마법사라는 테마를 위해서 당연히 빼야 할 걸 뺀 것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불멸불사전능의 마법사에게 어떻게 위기를 주는가? 전지전능을 무지무능과 통하게 한다. 마법사는 물질세계에 있어서 재앙이고, 서로를 배척합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인연의 끈으로 스스로를 묶어 물질계에 닻Anchor을 내리지요. 거기서 모든 갈등과 환희와 고뇌와 이야기가 생겨납니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마법사는 자신만의 세계에서는 분명히 전능하고 불멸하지만, 타인과 이어지려는 욕망이 스스로를 소멸의 위기에 던지게 만듭니다. 시트만 만들어놓고 홀로 쓰다듬는다면 무적이지만 세션에 펼쳐놓는 순간 고난과 시련에 동의한 것이 되듯이?
그렇다면 마법사의 소멸은 정말로 소멸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했기에 감수해야 했던 가능성이 발현한 것이겠지요. 소멸을 무효화하기 위한 선택이 앵커anchor와의 새로운 계약이라는 것은, 소멸을 피하기 위한 발버둥이라기보다는, 관계에 대한 갈망이 낳는 번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법사는 해탈을 무기한 유예하는 자들이기에…
뭔가 또 하고 싶은 말이 줄줄 새고 있었네요. 마기카로기아의 첫 세션에서 받은 인상은, 위에 써놓은 거창한 관계성이 어쩌구라기보다는; 방대한 데이터로 이렇게나 밸런스를 잡았다니 & 마법전이라는 거 굉장히 버겁지만 재밌네 정도였습니다. 금서가 스스로를 챕터 별로 끊어져서 만들어진 단장斷章이 인간 사회에 숨어 있고, 단장을 찾아내서 회수, 그리고 다 모은 단장을 합쳐 금서로 만들어서 최종봉인! 음 좋아 흐름은 간단하군!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기카로기아의 제 유일한 캐릭터-사카피 카이토-는 이름부터 괴이한데, 모티브를 정보생명체로 시작해서 SCP라는 개념을 적당히 끌어오다보니 이름은 상대적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감이 있지만(SCP→ 발음하기 위해 모음 적당히 넣자 → SaCaPi…) 설정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참 취향에 맞아서 마음에 들어요. 이번에 참가한 시나리오로 어쩐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 같지만. 아무튼 마음에 듭니다 네…
그러다보니 시나리오의 배경인 19세기 말에는 사실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설정이었는데, 음 좋아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지만 어쩐지 미래에서 와 있다는 것으로 하자! 라는 뇌내설정을 밀어붙였고, 그때는 이런 인과율이 저를 어떤 곳으로 이끌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
1876년 7월, 메이지, 도쿄
카이토는 이 시대에서 드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시작한 사업이 크게 성공해, 이름이 알려진 가문이었기 때문이죠. 가문… 가문? 그렇습니다. 가문. 하지만 정보생명체가, 그것도 이 시대보다 후에 태어날 존재에게 무슨 가문이란 말인가? 1인 가문. 생활 자체가 통채로 기만인 셈이었지요. 나이 설정부터가 세계배경과 안 맞아서 삐걱거리는데 오히려 이렇게 안 맞을수록 좋지 않은가?
아무튼 명성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는 혁명적인 정도로 오버테크놀로지의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사, 사이타마 시네마 프로덕션(Saitama Cinema Production)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죠. 정확히는 소유가문이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개인이나 가문이나.
거기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느 날 수상한 소동이 일어나는 현장 옆을 지나게 됩니다. 군중 속의 소녀. 커다란 칼을 든 원한 어린 눈동자가 인상적이었기에 카이토는 걸음을 멈추고 군중 속에 끼어듭니다. 세션 도입부잖아요.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이라구요.
유기체의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끼어드는 도입부까지는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마음가는 대로 연출했지만, 실은 다른 모든 PC들은 점점 카이토 주변을 주목하고 찾아오는 상황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각자가 다들 전혀 상관없는 동기로 얼기설기 흩어져 있어서 조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본님의 각기 다른 NPC를 표현하는 천변만화의 형상이 너무나… 엄청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마법사는 한데 묶인 운명공동체가 되어 있었어요. 무언가 그래야만 하는 운명의 힘이 자연스럽게 그래놓은 것처럼. 가족을 모두 잃고 복수를 염원하는 소녀, 누명을 쓴 건지 교활한 진범인지 알 수 없는 백작의 아들. 카이토는 소녀(유기체)에게 자신의 거처(매트릭스…)를 권유하고, 어설프게 인간의 마음을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우연인지 공교롭게도, 때를 맞춰 '검은 신' 고리니시체를 살해한 마도서를 찾기 위해 카이토에게 찾아오는 마법사들.
내 운명은 미래에 있어서 상관없지만.
"제 스승님이!" "연구!" "포탈의 임무입니다."
…뭐 도와줄 수도 있고. 분과회 '검은 신을 위한 Paradox'로 할까.
그리고 금서의 조각, 단장에 빙의된 인간을 찾기 위한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기이한 인연처럼, 온갖 마법적 미스테리는 카이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카이토는 그저 자기가 미래에서 온 탓이려니 하고 말아버립니다. 마음을 놓은 탓인지, 한번 회수했던 금서의 조각은 세계의 악의를 감지 못한 마법사들의 손에서 달아납니다.
앗, 우리와 세계의 상태가…?
😲😲
1891년 2월, 메이지, 시마네
마법사는 불멸, 마도서도 불멸. 강대한 마도서를 찾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평생이 아니라 몇 대를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사건……. 실제로 그랬습니다. 모두가 '검은 신'의 흔적을 찾지 못한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시간의 흐름표를 굴렸고, 룰 요약에 있는 걸 보기는 했지만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던 저는 흥이 났습니다.
15년이 흘렀군요! \(ㅇㅁㅇ)/ 그 사이에 마법사의 수행으로 마법재화를 얻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렇다면 저는!
카이토: 영화 제작사를 맡기고 10년의 수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본: (??!) 그 그래요.
카이토: (이상한 분위기 눈치 못챔) 시노비의 마경, 데지마를 돌파하다, 마법의 원소와 근원을 같이 하는 닌자의 보구를 손에 넣었습니다. 음양검 미카즈키! (혼자 신남)
아본: (흐음)
본심을 밝히자면 이건 거창한 생각에서 나온 건 아니었고, 다른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요소를 양념처럼 끼워넣어서 아는 사람만 아는 오마쥬/패러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른 뒤 두 번째 사이클이 시작하자마자 이건 뭔가 내가 자기 손으로 지옥불을 피우는구나 싶었습니다.
"오라버니는 좀 맞아야 해요!"
(아 아니 시간의 흐름표가… 나의 연출 욕심이… 웅엥웅엥)
다시 만난 시즈… 시즈카.
정말 다들, 그렇게 저를, 온갖 것으로, 놀리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으셨습니까^^? 즐거워하시니 저도 좋군요^_^;;;;;
시간의 흐름을 너무 과소평가한 제가 잘못했습니다 등짝은 그만 때려주세요……
금서를 찾아 헤매던 네 마법사들의 행적이 이제는 읽혔는지, 시즈카는 네 PC를 모두 불러모으게 됩니다. 당연히 카이토는 2사이클에 만나는 게 필연이라 생각해서 수행을 떠난 것뿐인데 그걸로 잔소리를 듣는 인간의 마음이 아직 없어서 또 등짝을 맞게 됩니다^^;;;
"사람이 괴담을 수집하면, 괴담 또한 그 사람을 수집하게 되네."
"오우 오리엔탈! 오컬트! 심오함!"
(아오 이 유기체가)
그런 말이 있지요. 인간의 마음. 과연 그게 뭘까요.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닌자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법사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봅시다. 질문에는 이미 답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무엇인가?"와 같이. 닌자의 마음이든 마법사의 마음이든.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미 알려주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비록 비인외도의 길을 걷더라도, 마법사 또한 마음이 있는 거죠!
카이토: 그러니까 다짜고짜 전투는 안 돼!
렌: 그런 게
히비키: 어디 있어
린: 시간이 없으니 전투해야죠!
카이토: 마음! 마음을 가져라 유기체들아!
렌: 나도 유기체 아니거든!
히비키: 나도 아니거든!
린: 마법사의 마음은 전투를 거는 마음!
카이토: (아악)
아본: ㅋㅋㅋㅋ (유열)
카이토: 아무리 수상하더라도! 비밀을 알기 전에는 확신하지 않는 것이! 닌ㅈ, 아 아니 아무튼 마음!
아본: (유-열-)
린: ……좋아요. 포탈의 이름으로 조사─
아본: (유─열─)
린: 내가이럴줄알았어아악!
카이토: (머쓱)
렌: 역시 뭔가 수상하면 바로 전투가 정답입니다^^!
카이토: 안 돼… 마음 버리지 말자 얘두라… 이건 큰 드라마를 위한… 미래의 내가 알려준 길… 웅엥웅엥
마법사의 메타-비메타를 가리지 않는 치열한 선택 공방 후에, 넷은 모두 후회하고 맙니다. 금서 한 조각을 찾았지만, 다른 한 조각을 또다시… 놓치고 말았으니까요…
이걸로 마음을 부르짖었던 저의 발언권은 급속도로 소멸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침몰하는 펜타곤(sinking… 아무말…)의 이름으로 절절한 궤변을 펼쳐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어요. 사실 저도 그 수상함을 예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선택에 대비되어, 스쳐간 생각이 있었습니다. 카와시마… 누구보다도 가혹하지만 사실 인간의 마음에는 상냥한 암흑신(??)
그래서 저는 정합성의 드라마를 선택했습니다😂 아 저의 선택 하나하나가 정말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밟고… 아닙니다 잊어주세요
"아악 왜 단장이 아닌 거야!"
그래요. 그때 제가 그런 절규를 했었지요. "왜 단장 아닌!" 나중에 찬찬히 기억을 떠올려보다 든 생각인데, 이건 대사만 들어보면 마치 적과 아군의 이분법만으로 생각하는 전투기계 같잖아요? 혹시나 그런 느낌을 받아서 세션에 이입되지 못했던 분이 계시다면 죄송스러워져서ㅠㅠ; 그것은… 어째서 나에게 이런 가혹한 선택을! 나는 왜 이 PC를! 왜 내가 이 비밀을! 하필 이런 연출 직후에! 뭐 그런 절규가 하나로 압축되어 튀어나온 것으로… 흐흑 고통 고통
뭐 다 같이 저를 압박하시며 즐기셨으니 아무래도 괜찮았겠지 하고 합리화를 잠시 하고ㅠㅠ;
이 배치에서는 정말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악의, 아니 치밀한 설계의 끝에 서 있는 이미지가 보였습니다. 이 형상은 사람의 마음을 손바닥에 놓고 미소짓는 카와시마…! 핸드아웃은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기어오는 악의가 보이고,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잖아😂
"황혼의 천사 라스푸틴, 마법전을 신청한다."
금서를 수집하는 타락한 마법사들, '서적경' 또한 이 일에 끼어듭니다. 제6계의 힘이 담긴 마도서란 그렇게나 대단한 것. 그러나 분과회는 역으로 그를 제압하며, 금서를 어떻게든 한 조각 한 조각 필사적으로 끼워맞춥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진리만큼은 초월하지 못해 슬퍼하는 마법사들.
시간이 흐릅니다.
😭😭😭
1923년 8월, 다이쇼, 도쿄
광란의 20세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태와 무관하게 무한의 시간을 구가하는 마법사들은 여전히 검은 신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실은 마법사들이 만난 인물들 중에는, 역사에서 그 이름을 찾기 쉬운 자들이 많았지요. 초대 카이라쿠테이 헨리 제임스 블랙, 괴담 수집가 라프카디오 헌,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 등등. 익숙한 역사였다면 조금 더 진한 친밀감을 느꼈을까요? 설령 그랬더라도 다이쇼 시대에서는 아무래도 거리감을 두게 되었겠지만.
그보다도, 찾지 못한 마도서의 마지막 한 장. 실제했던 역사보다도, 완성되지 못한 저녁놀의 이야기가 더욱 마법사들을 재촉합니다. 3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시간의 흐름표를 굴렸습니다……
카이토: 명상? 혹은 봉인?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본: (흥미)
카이토: 음 그래요. 미래의 마법사이기에 세계의 인과가 저를… 봉인했던 겁니다.
아본: (진진)
카이토: 이때를 대비해서 미카즈키 중 하나인 양검을 시즈카에게 맡겨둔 거죠(혼자 거창).
아본: (유)
카이토: 음양쌍검의 공명이 마침내 세계의 봉인을 부수고 저를 꺼내기까지 32년.
아본: (열)
카이토: 그래서……
시즈카는 카이토가 돌아왔다는 것을 32년 만에 알게 되겠지요. 저는 아본님이 신났음을, 음 그러니까 좀 위험하게 신났음을😂 미리 알았어야 했습니다. 다시 본심을 밝히자면 이건 그냥 표를 충실히 해석했던 것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밟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생생한 이야기를… 마법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역설은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다시 만난 중년의 시즈카.
"자네, 아버지와 정말 똑같이 생겼군……."
"설령 스승님이라 할지라도!"
"검은 신이여!"
"단장 붕괴. 마법전을 신청한다."
인간의 슬픔은 언젠가 세월에 쓸려 사라지겠지. 눈물이 빗물에 쓸려 사라지듯이. 마법사들은 들끓는 인간의 마음을 묶고, 검은 신의 유산을 결국 모으는 것에 성공하고야 맙니다.
기억을 떠올려보는데, 체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순간이 좀 늘었던 건가 싶은 부분이 있던 거 같네요.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이야기가 종막으로 가면서 온갖 드라마의 향연이 정신 없이 터졌으니까요. 그냥 이야기로 제시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주사위의 수치만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구도와 선택과 변수가 모두 섞여서 사람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카타르시스! 마법사가 소멸을 각오하고 세상에 머무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적수를 치워버릴 생각만만이었던 뫄님을 정좌시킨 아본님의 한 마디("얼굴 파라켈")도, 하필 단장을 건 마법진에 뛰어들어 소멸의 위기에 몰린 게 히비키였던 것도, 그래서 부활을 위한 계약의 대상이 하필 카이토였던 것도, 그 상황에서 또 인간의 마음을 발현해버린 저의 자승자박도…… 그래요 스스로 선택한 단 하나의 쇠사슬이었던 겁니다. 환혹의 이야기를 위해 내 모든 걸 희생한 것이야ㅠㅠ
히비키: 그대와 계약해서 세상에 다시 닻을 내린다!
카이토: …
히비키: (설마 이상한 소원은 아니겠지 같은 마법사잖아)
아본: (흥미)
카이토: 그래요. 그렇다면…
아본: (진진)
카이토: 나 대신,
아본: (유)
카이토: 시즈카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본: (열)
카이토: 그녀의 소원을 들어줘.
아본: (유─열─)
마지막 금서의 조각을 모으고, 희생될 뻔한 히비키를 되살려내기까지 한, 잃은 것 없는 (것 같은) 마법전.
그리고 긴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찾아왔습니다.
마도서를 최종봉인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실 것이 있나요?
아 정말 이제 생각해보니 온갖 유열을 참고 또 참는 아본님이었군요 아오 증말ㅋㅋㅋㅋㅋㅋㅋ
신변을 정리하고, 대금서 최종전을 준비하는 마법사들. 마도서를 추적 동안 사용했던 인간의 모습일 때 신세를 졌던,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남기거나, 인사를 남깁니다. 저요? 카이토는 생명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카이토: 저는 정리할 신변이 없기 때문에
렌: 시즈카 있잖아!
카이토: (아 아니 누가 인사도 안 했댔나)
어쩌다보니 마지막을 표현하기 좋은 것이 있었지요. 음양쌍검 중 하나를 시즈카에게 줬었으니, 남은 하나인 미카즈키 음검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중년의 시즈카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되묻습니다. 또 어딘가로 사라지려는 순간인지? 아니면 이번을 마지막 여행으로 돌아오겠다는 증표인지? 카이토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암흑신 에이미치로가 새 세션을 열어줄 테니까 마지막 여행이 아닐 거 같아서
그리고 소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히비키 언니에게 빌 소원이 있었죠."
"오라버니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을,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마음을"
아 정말 나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아니 감탄의 포인트가 이게 아닌가 이쯤되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흥냐럼ㄴㅇㄹㅁㄴㅇㄹ
마법전이 어떻게 흘러갔는가, 는 이 세션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습니다. 힘 영역의 마소를 다섯 개씩 두 번이나 충전했지만 엔트로피의 왕국 소환이 두 번 연속으로 실패했다거나, 전투 승리로 얻은 금서주문을 죄다 카이토가 몰아서 가지게 됐으나("역시 주인공!" "으으 싫어…") 사본 나락문을 주문까지 새로 지어가며 영창했더니 혼의 특기 엔트로피의 제약(-1)으로 실패했다거나 하는 그런 순간들이 지나갑니다만(많다)……
클라이맥스를 둘로 찢어져서 하게 되었지만 그런 것도 아무런 상관없는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마지막 전투를 갈라져서 하는 건 실패인 걸로 취급하지 않나? 아뇨 저는 마지막 전투 같은 거 하기 전에 침몰할 건데요… 싱킹sinking…
카이토가 사라진 아이의 모습을 홀로 바라볼 수 있는 대신 지불한 대가는, 오로지 홀로 그 추억을 감당하는 것. 그제야 인간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 카이토는, 혼잣말로 분과회를 해산시킵니다. 인연이 닿으면 미래의 시간대에 있는 자신이 이미 보았을 것이라 믿으며.
가장 강력한 적은 자기 자신의 업보.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의 세계. 그리하여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고 소중한 것이… 그대를 긍정하기 위해 원인도 결과도 없이 사라지네. 이제 무엇을 위해 추억하려나? 다만 마도사는 시간을 걸을 뿐. 마도서대전 마기카로기아, 환혹의 노스탤지어!😂#TRPG
아본님의 피지컬 로지컬 매지컬에 줄곧 감탄하며 농락당한 즐길 수 있었던 환혹이었고 정말 해달라고 했던 것은 미래의 제가 시킨 일이라고까지 생각되는… 압도적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사실 에이미님이 최고의 세션이었다고 해서 벼르고 있었는데 기어코 소원을 성취했군요(ㅋㅋㅋ) 기억을 되새겨보니 아 그때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라거나 뭐 그런 회한이 겹쳐오지만 그러나 세션은 단 한 번,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저는 무척 즐겁고 고통스러웠 아니 감격했답니다.
꽤 여러번 손사래를 치셨던 시나리오인데, 그만큼 GM의 고생이 많이 느껴지는 시나리오고 세션이었습니다. 감동감동.
리플레이를 역으로 가공하신 점도 그렇고 아마 카와시마가 상정한 오리지널과는 여러 가지로 달라진 시나리오일 거라 생각해요. 실제로도 원래는 3인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4인으로 시나리오를 재가공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어쩐지 PC들의 구도를 쓱 봤을 때, 어쩌면 동료로 죽 끌고 가기 애매한 순간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긴 했어요. 물론 참여하신 분들은 침몰펜타곤^^을 구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기 때문에ㅠㅠ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험기획국의 시나리오 중 사람을 환혹시키는 것은 룰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지만, 마기카로기아의 이 시나리오는 또 다른 각별한 맛이 있었습니다. 룰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생각해볼 정도로요. (후기인데 정신차리고 보니 이상하게 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은… 룰에 환혹당해서…)
닌자는 클라이맥스의 갈등 구도 자체로 드라마를 만들고, 인세인은 장르에 따라 치밀한 설계가 필요할 정도로 제각각인데, 마법사는… 마법전은 아무래도 좋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침몰시킬 수 있었습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은 선택이 제게 돌아오는 그 기분을 단 몇 시간만에 맛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