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대수의 별이 떠 있는 우주에서 단 하나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게 가능하다면,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거기까지 닿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른 걸까.
"어떤 우주의 나라도 널 아낄 거야. 아끼게 될 거고. 보이지 않는 끈이란 걸로 이어져있다면 말이야."
"다행이다. 그런데 가능하다면 말이야.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 마지막에는…"
주 지휘관, 일어나세요. 곧 소행성 지역을 지나 워프 장치를 통과합니다.
PC① 라이언 베일리 : 루와즈
PC② 라헬 슈타인바인 : 역설
with GM 유피
'별무리', '별무리 FFU'의 스포일러는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유피님의 별무리 후속작 별무리 FFU! 아직 공개 안 됐죠? 첫 플레이를 했습니다^ㅁ^ 느이 집엔 이 세션 없지? 이런 느낌이군요(으쓱으쓱) '별무리' 때도 테스트 플레이어로 세션에 참가했는데, 후속작에도 첫 플레이를 맡겨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유피님의 '별무리'는 우주선을 운행하던 PC①에게, 작은 셔틀을 타고 표류하던 PC②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시나리오죠. 인세인이니까 각자의 비밀이 있고, 그러나 각자의 생각과는 별개로 닥쳐오는 위기가 있고, 두 PC는 공허한 우주공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합니다……
그리고 별무리 FFU(이하 FFU)는 한번 실패한 뒤의 이야기입니다. 혹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뒤거나.
별무리도 FFU도, 저 멀리 점점이 박힌 별빛이 보이지만 어둡고 공허한 공간이 가득한 우주의 이미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에 압박당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영화 그래비티 생각을 많이 했어요. Don't let go. 사족이지만 전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러갔고 그때마다 좀 울었습니다. 별무리도 좀 사람 울리는 시나리오지요?
세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전작인 별무리를 했을 때는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이라서 그랬던 건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별무리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2인 시나리오 특성상 캐릭터의 궁합과 플레이어 호흡이 모두 잘 맞아 떨어지면 환상적인 세션이 됐… 된… 될? 기억이 좀 흐릿한데 그때 "멋있는 대사!" 이런 닦달을 했던가 "멋있는 연출!!!" 이런 닦달을 했던가 애매하지만 아무튼.
유피님의 시나리오는 플레이어가 몰입하면 할수록 그만큼 강렬한 반향을 돌려줘서 좋은데 좋은만큼 질투가 나네요ㅠㅠ
FFU의 이야기는 결국 별무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PC②가 PC①과 재회하면서 시작합니다. (와장창!) 갑작스럽고 이상한 재회에 반가워하거나 이상해할 틈도 없이 이상현상 속에 멈추는 우주선.
A.I. 블루문으로부터.
"기압 저하. 산소 레벨 감소가 감지되었습니다."
"이온 전지의 정상 작동이 불가능합니다."
"달로 재진입하기 위한 동력 계산 중……"
"생명 유지 장치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정지하겠습니다."
무한한 우주 속 고장난 우주선. 역설적인 폐쇄공간은 익숙하지만 적응할 수 없는 두려움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그렇지만 둘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생존본능이든, 사명감이든, 각자의 이유로……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저는 리스펙만 한 게 아니라 별무리 때의 캐릭터 이름을 살짝 비틀었어요. 라엘이 라헬이 되었죠. 전작의 결산이 잘 기억은 안 났지만 유피님은 10점의 공적점을 인정하셨고, 반복되는 참극에서만 가능한 어빌리티를 골랐습니다. '꿈의 예고'. 이것은 무엇을 뜻했는가?
별무리의 세계에서 우리가 어떤 마무리를 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의 인세인 별무리 ffu. 일 년도 더 전에 플레이했던 시트를 찾아서 잊고 있던 이름을 꺼내왔다. 우주비행사 라이언 베일리(22살처럼 보임, 여성처럼 보임), 연구원 라헬(라엘) 슈타인바인(27, 남성).
그러고보니 라헬은 시작부터 '현실회의' 공포판정을 했었죠. 정황상 적절하기도 했거니와 랜덤 특기도 아주 딱 맞게 나왔고 연출 욕심이 나서 그대로 가면서 루와즈님을 환장하게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현실회의 면역인 캐릭터였더라고요. 하긴 대략 ■■■을 반복하면서도 착란상태에 빠지지 않았던 라헬이 고작 그런 것에 흔들릴 리가 없었는데! 하지만 세세하게 하나하나 반응할수록 세션이 풍부해지니까요(이것 때문에 배드엔딩이었다면 이렇게 한가롭게 말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산소농도가 레드존까지 떨어졌습니다."
FFU에서 주어진 상황은 별무리 때보다 더 급박하면서도 노골적이었습니다. 조사에 특정 특기가 강요되거나, 페널티를 받거나, 실패할 때 대가를 치르거나 등등 룰적으로 바로 와닿는 상황도 있었지만 제게 더 인상깊었던 것은 우주선 창밖을 스쳐지나가는…… 그것이었지요.
룰에 익숙해질수록 무덤덤해지는, 혹은 무신경해지는 면들이 있지요? 어차피 클라이맥스 페이즈가 되기 전에는 안 죽을 테니까- 여기서는 쇼크 좀 받아도 계산 상 괜찮으니까- 저 PC 사명을 봤을 때 분명히 나에게 접고 들어올 테니까- 이거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얼른 전체공개하는 게 편하니까- 같은 것들 말이에요. 룰에 미숙할 때는 그것 때문에 세션이 부드럽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 룰에 능숙해질수록 세션을 방해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지요.
우주선 밖을 스쳐지나간 그것은, 그런 면에서 사람을 압박하는 간단하면서도 아주 무서운 장치였습니다. 가볍게 시도할 수 있는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그런데 함부로 시도하지를 못하겠어! 저건 실패하면 사라지나? 시간이 지나면 수습할 수 없게 되나? 성공 확률이 높은 쪽에게 양보? 지금 즉시 내가 도전? FFU에는, 아니 별무리 연작뿐만 아니라 유피님 시나리오에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끝을 내자."
"이제 죽어줘."
SF와 우주적 판타지 사이를 넘나드는 별무리의 이야기는 이때 극점을 찍었던 것 같군요ㅠㅠ 아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런 소리를 캐릭터가 아니라 제가 마음 속으로 외쳤지요. 흐릿한 빛, 흔들리는 끈, 고장난 것들. 그런 건 다 무슨 소리인 줄 알겠어. 알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현상 속에서는 ??????
한순간 잠깐, [결국 실패로 끝나는 이야기야?] 하는 의문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두 PC, 정보들, 프라이즈들, NPC. 대체 이게 뭘까. 어찌어찌 실마리를 풀어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되돌아가는 이야기로 끝맺어야겠다고 각오할 정도였습니다. 전형적인 '나는 죽더라도' 엔딩을 마음 속으로 거의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탈출용 캡슐 열쇠를 주느냐 받느냐 하는 작은 문제 앞에서도 내적갈등이 들끓을 정도^^…
정신을 차리고보니 플레이 중에 (카페에서) 이런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거 너무 너무한 거 아닌지.
Where are you now?
I'm faded.
Can you hear me as I scream your name?
Do you need me before I fade away?
에라, 그래 이번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리자! 하던 절망이 뒤집힌 것은 정말 필사적으로 마지막 기회를 붙잡은 이후였는데, ■사이클이 끝날 때 정말 암담한 클라이맥스를 각오했다가 ■번째 씬이 주어졌을 때 새삼 차오르는 새로운 각오란… 유피님 너무 니알라유피 아닌지ㅠㅠ
"17■4■8■9■3■5■2■…"
"이제는 들려… 우주의 고동이."
"죽음과 운명도… 이 드넓은 우주에서는 그저… 작은 파동일 뿐인 거야."
그렇지만 니알라유피가 되기에는 너무 착했던 유피님은 사실은 ■■까지 주시면서 온갖 가능성을 열어주셨고… 라이언과 라헬은 빛으로 별무리를 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달 기지에서 눈을 뜨는 라이언과 라헬. 종착점인 FFU입니다. 그러고보니 FFU는 무엇의 약자였을까요? U는 Universe? 그렇다면 FF는? 처음? 마지막? 환상? 더 빠른? 무엇인지는 몰라도 괜찮겠지요. 이제 더는 운명을 피해 뛰어넘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오늘의 별무리 FFU. 너에게, 우리에게 찾아오는 죽음. 소멸의 운명. 수백수천수만수억… 아무리 반복해도 참극이 끝나지 않아. 영원히 반복되는 참극?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반드시 너를 구할 거야. 이번에야말로. 재생되는 기억, 연결되는 의식, 서로에게 내민 손. 별무리가 모이고─#TRPGhttps://t.co/VPfKTSptW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