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타인. 자아를 만들어주는 것은 타자. 존재는 모두 거울을 처음 본 아기 고양이와도 같은 것들. 상식을 초월하는 마법사들이야말로, 인계에 내린 닻Anchor으로 투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진리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다.
빛은 어둠의 왼손. 진실은 거짓의 반대편. 그리고 나는 너의 뒷면. 나와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너에게 고한다. 이 카타르시스를, 감정의 정화를, 운명의 선택을.
'나와 너'
분과회 '아틱 Paradox'
PC① 카오스 마그누스 / 시간의 바다를 헤엄치는 아카샤의 용(Akashic Astral Surfer) : 역설
PC② 마빈 / 일곱 번째ሰባተኛ 힘Kaffa : 루와즈
with GM 아본
'너에게 고한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본님의 마기카로기아 2인용 시나리오 '너에게 고한다' 세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법사! 2인용! 유열의 아본! 이미 완벽한 3원색 아닙니까? 이 색깔은 유열의 색이다…… 크윽 크흐흑
진정하고 다시 침착하게 이야기를 해봅시다. 2인용 시나리오라는 것은,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 있죠. 옆에 있는 GM과, 내 바로 앞에 있는 또 다른 PC, 그리고 나. 단 셋의 존재로 말이에요. GM은 무언가 여러 가지를 안배하는 입장이니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내 PC와 다른 PC, 즉 나와 너만이 존재하고 그 마주봄에서 모든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지요. 나와 너는 애써 서로 다르게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거울상입니다. 아 너무 좋군.
그러고보니 처음 자리를 잡을 때, 아본님이 굳이 의자를 따로 빼더니 테이블 옆에 좌석을 만들더군요. 2인용 세션이니까, 그냥 앉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아닙니다. 2인용 세션이니까 시작부터 더 섬세해야만 하는 겁니다.
역설: 음, 그곳에 앉으시는 거군요.
아본: (뭐가 이상하죠? 라는 눈빛)
역설: 즉 플레이어끼리 붙어 있지 않도록… 마주보게 따로 떨어뜨려놓는다는 것…
아본: 제가 두 분과 가까이 앉아서 하려구요^_^
역설: (안 듣고 있음) 이 자리 배치가 의미하는 것은…! PC 둘의 갈등! 전투! 소각! 멸살! (의심역귀
아본: -_-
물론 농담이었습니다(하하). 그리고 제 농담은… 음 그러니까 시작은 미약한 농담이었으나 세션 후반에 가면 창대하리라…
아카샤의 용, 본체 나이 약 40억, 자아의 나이 1만.
용의 숨결! 역린!
…
마력결정: 주사위 둘 중 낮은 것을 선택: (6, 6)
이 시나리오는 3계제, 정확히는 첫 작성 캐릭터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캐릭터로서는 처음 시작하는 마법사라니, 낭만의 감각이 두근두근하지 않나요? 2인 시나리오라는 점과 합쳐지니 낭만의 폭풍이 몰아칩니다. 그렇다면 캐릭터도 대충 만들 수는 없지. 마침 용종 캐릭터용 추가 룰이 있다길래 꼭 해보고 싶었던 걸 구현했습니다. 용… 드래곤… 데미갓/안티갓, 아니마/아니무스, 시니피앙/시니피에, 코스모스/카오스… 중얼중얼
시작할 때는 희망의 순풍이 불었습니다. 비록 컨셉에 충실하려고 대놓고 성능을 버리고 있었지만.
아방궁 소속과 용 종족(특히 드래곤 브레스)은 전혀 시너지 효과가 없는, 아니 그걸 넘어서서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가 있는 조합이었지만 저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 내면에서는 [드래곤(용종) = 이단자(아웃사이더) 고정 = 원탁 소속을 고를 수 없음 = 40억 년을 살아온 태고의 용을 하고 싶었는데 원탁을 못한다니 이 시건방진 종차별주의자 집단 대법전 같으니 다 멸망해버려라 아니 이게 아니라, 음… 진리 추구하는 캐릭터성이라도 세워야겠다]라는 롸지컬 아니 로지컬한 이유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만… 이것은 또 어떤 결과로 돌아왔는지는 후기를 읽다 보면 나올 겁니다.
'너에게 고한다'는 마경의 육분의로쿠분기 시에 벌어지는 기이한 초자연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두 마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무엇인지는,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의 프롤로그, 금단의 마법이 꿈틀거리는 전조로 공개되지요.
이 장면이, 그리고 이 장면뿐만 아니라 배치된 앞뒤의 맥락이 굉장히 절묘해서 나중에 돌이켜보니 감탄이 나왔습니다. 분명히 이 실종사건에는 무언가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다. 그리고 이미 시간이 흘러 흘러, 어쩐지 돌이킬 수 없이 많이 사라진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분과회를 결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집니다. 전조가 앞이고 분과회 배경 설정이 뒤인 배치가 진행을 간결하면서도 부드럽게 만드는 좋은 배치였다고 생각해요.
역설: 나이는 40억!
아본: (앗 설정 붕괴가!)
역설: (급하게 수습) 하지만 마지막 빙하기 때 생명의 위기를 막기 위해 본체가 만든 자아입니다!
아본: (호오)
롸즈: 외전이군요?
역설: 드래곤은… 아웃사이더밖에 안 된다길래(눈물)
롸즈: 후후 난 서경
역설: (종차별주의자놈들 다 부숴버릴 것이다) 그러면 봉인말살지정에서 꺼내준 은인이라는 느낌으로?
롸즈: 그래요.
아본: 관계는 어떻게 혈연이죠?
역설: 마빈-사바타나 카파-의 본신은 커피나무니까, 지구에서 섭취한 수분은 실은 용맥의 기운이었다는 걸로 하지요. 정말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혈연…
시작부터 골수를 빨아먹히고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아님) 일상생활에서는 카페 사장과 직원의 관계.
분과회 이름인 아틱은 이 도시의 카페 이름이기도 합니다. 로쿠분기 시의 지형과 각 주요시설이 나와 있는 지도를 사용한 것도 세션 묘사를 풍부하게 하고 몰입에 도움이 많이 되었네요. 도시 전용 씬표도 이곳이 마경임을 잘 알려줘서 몰입을 도와주는 좋은 요소였습니다.
마기카로기아의 마법사는 앵커가 없으면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는 설정에 맞게, 첫 작성 때부터 캐릭터에게 앵커를 미리 주고 시작하죠. 약간 덤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쉽죠? 아닐 수도 있지만 이때는 약간 그랬어요. 이름도 속성도 주사위로 정했거든요. 물론 주사위로 정한다고 항상 대충 정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때는 2인 세션이었기에 NPC보다 PC에 집중한 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과회 결성을 종용하는 의뢰자가, 첫 단서를 제시합니다……
재앙의 유열신… 혹은 유열의 재앙신… 아본시마…
그래요. 예상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예상했던 걸지도 모르죠. 첫 작성 캐릭터를, 그것도 단 둘인 시나리오에서, 최대한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이 시나리오에서는 계속해서 앵커의 가능성을 지닌 일반인이 스쳐지나갑니다. 재앙에 휘말릴 수도, 구할 수도, 방치할 수도, 그리고 손을 내밀어 인연의 끈을 묶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마법사들을 끌어당기죠.
마법사-나와 너-, 앵커-나와 거울상-, 우자-나와 세계-. 기이한 사건은 시간(사이클)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단 둘뿐인 분과회는 단장의 빙의심화조차도 냉정한 우선순위 계산법으로 처리하며 바쁘게 움직입니다.
역설: (?!) (잠깐 아무말에 너무 진지한 피드백이 돌아오는데) 혹시 내가 또 뭐 밟고 있는…?
롸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본: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설: (환장)
묵시록의 나팔이 가혹한 숙명을 노래하듯 숨겨진 진실, 아니 우리의 선택이 만들어낸 진실이 드러납니다. 너와 나의 단절. 금서의 단장이 비웃는 소리가 유열차게 울려퍼집니다.
그렇게 말했었죠. "이 자리 배치가 의미하는 것은…! PC 둘의 갈등!" 그렇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의심은 추리와 구분할 수 없는 겁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아본(단장): 캬캬캬캬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어? 후후후후
역설(????): 크큭 너희는 용의 봉인을 깨우지 말았어야 했어…
아본: (아니 이건 또 누구의 대사야?)
역설: (이젠 모르겠다 종차별주의 대법전 다 주거라) 아직도 모르겠나? 마빈 네가 단장 '너에게'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본: (????)
제목이 '너에게 고한다'니까… 이쪽이 '고한다'면 저쪽은 '너에게' 아니었는지(웅엥)
농담이긴 했지만 이건 최소 핸드아웃과 최소 선택지 사이에서 이제 대사와 선언이 정신줄을 놓기 시작한 전조였습니다. 아카식의 용… 본체에서 분리된 자아… 폭주하는 스펠바운드… "큭 닌자처럼 자진해서 패배하는 것으로 비밀을 넘기지 못하다니 이런 아카식의 제약!" (돌아버린 메타플레이)
2인 시나리오로 유명한 인세인 '낙원' 시나리오에서도, 핸드아웃의 배치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짓고 플레이어를 고뇌하게 하는데 비슷한 구도에서 던져주는 고뇌가 정말… 악랄하고^^ 좋았네요^^;;
게다가(혹은 그러나?) 저는 고뇌해야 하는 선택지에서 유리되어 있었기에 이 악랄함에 올라타는 걸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주사위가 망하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조율-회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실패하든 말든 모르겠고 모든 걸 금서탓을 하면 그만인 것… 그리하여 영문 모를 2배의 악랄함이 루와즈를 덮친다!
역설: 혹시 모르니 마소나 받아가요.
롸즈: (눈물 줄줄)
아본: (유열)
롸즈: 어쩔 수 없군요. 마법전을 선택할 수밖에…
역설: 나의 진실을… 우리 사이의 빛을 밝히지 않는 건가…!
롸즈: 단장 고한다!
역설: 정말인가! (이미 유열 준비 중)
롸즈: 마법전을!
역설: 크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
롸즈: 신청한ㄷ
역설: ■■■■■■─!!
롸즈: (왜 이래 무서워)
그리고 카오스 마그누스는 원 없이 드래곤 브레스를 뿜기 시작합니다. 야 신난다 이게 어쩌다 터진 시너지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신의 한수! 역린! 금지된 주문! 포식! 용의 숨결! 그리고 지구와 수명을 같이 한 40억 년의 본체 드래곤마저 타락하면 지구가 멸망한다! (아무 선언) 그야말로 뭐든 할 수 있는 전능감이 드라마씬과 전투씬을 통틀어 연출과 데이터 쌍방으로 구현되는 것이 그야말로 만능감… 카타르시스…(루와즈: 아악 하지마 왜 그렇게 웃어요!)
세션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능에 충실하겠다고 했던 루와즈의 마빈이, 컨셉에 충실할 테니 부탁한다고 말했던 역설의 카오스에게 처절하게 물리고 뜯기고 박살나는 것이 아주 아이러니한 클라이맥스가 전개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는가. 최대로 상정했던 수치를 아득히 초월하는 위력의 드래곤 브레스…(너무 좋아함)
실은 진실이 드러난 다음에도 꽤 선택의 가능성이 흘러갔기 때문에, 제가 신이 나면 날수록 루와즈의 고통고뇌는 깊어갔습니다. 고통고뇌고장. 마지막 핸드아웃, 진실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마법전을 신청하는 마빈… 그것은 어쩌면 최선의 수였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선택하지 못한 미지의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것을 이용해 루와즈의 양심을 마구 공격했습니다(ㅋㅋㅋ)(이쯤되면 인간금서)
역설: 거대한 커피나무가 용맥의 생명을 모두 빨아먹어버렸구나!
롸즈: ㅜㅠ
역설: 내 빛을 찾아주지 않았어! 그래서 이제 나는 언데드 드래곤이다!
롸즈: ㅜㅠ
역설: ■■■■■■─!!
……아 녹음 파일 듣는데 정말 이 무슨 에반게리온도 아니고 버서커도 아니고 괴상한 혼종이 되어서 PC인지 NPC인지 모를 대사를 마구 터트리는데 거의 뭐 세션의 성패는 잘 모르겠고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롸즈: (고민) 기사소환…?
역설: 나의 타락을!
롸즈: (고민) 지금 교본…?
역설: 네가 관측한 순간!
롸즈: (고민) 핵공격… 주문 효과는 뭐하지…
역설: 태고의 용이 타락한 것이다!
롸즈: (고통) 아악
역설: 세상에 마빈-사바타나 카파-의 혼의 특기가 '오해'야…
롸즈: (뭐 왜 뭐)
역설: 네가 나를 '오해'한 그 순간! 그것이 실제로!
롸즈: (팍팍) 흐어어엉
음 반성합니다(무엇을)
너무 신나서 최선을 다해서 공격하지 못한 것 같아요(대체)
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여유로웠던 저와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영혼까지 끌어낸 계약의 부스트로 간신히 카오스 마그누스의 마력을 0으로 만들어버리기 직전인 마빈. (역설: 나를 주기고 가라) (루와즈: 아악)
마기카로기아 허상서가: 너에게 고한다. 2인 시나리오만이 가능한 카타르시스를 전능불사의 마법사에게 적용한다면? 그 의문의 극한을 보았다.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너에게 고한다, 이 카타르시스를. 감정의 정화를. 운명의 선택을.#TRPGhttps://t.co/Cb4TIaBdhP
멋있는 대사! 멋있는 대사!! (루와즈: 저녁 사드릴게요) (역설: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마빈은 묵시록의 나팔도, 묵시록의 용도 모두 물리치고 금서의 마법재앙으로부터 도시를 지켜냅니다. 카오스는 빈손으로 왔던 것처럼 빈손이 되어 도시의 평화를 바라봅니다. 쓸쓸한 시선이었을까요? 시트 한쪽에 적히는 앵커의 흔적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으니 허허롭기는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감성이지 용의 감상은 아니었을 테지요. (역설: 마빈도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아본: 아니 그건 안 됩니다 ㅋㅋㅋ) (역설: 그래야 대마초 주사위가 완벽해진다구요!) (아본: 아니?)
예기치 못한 시나리오의 흐름 때문에 폭주해버렸지만… 되돌아보니 절묘한 장치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클라이맥스의 전투 커맨드 하나하나까지 피가 마르는 전개를 이끌어내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음 저는 피를 말리는 쪽이었지만 아무튼(??) 최소 핸드아웃의 최대 감성은 언제나 저를 감탄하게 합니다ㅠㅠ
쓰는 와중에도 느꼈고 쓴 걸 훑어보면서도 느낀 건데, 아무래도 이 후기는 시나리오의 감상으로서는 부적절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너와 나'의 이야기니까요. 마치 위태로운 낙원의 이야기처럼, 내게 고하는 너의 모습만이 가득한 이야기였습니다
\(ㅇㅁㅇ)/
단 둘이기에 쌓을 수 있는 유대감과, 그런 유대감이 있기에 부숴지는 믿음과, 그리고 한번 무너졌기에 다시 쌓을 수 있는 의지. 그 정반합의 과정 속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도착하는 결론. '너에게 고한다'는 마법사의 세계에도 그런 격류가 있음을 증명하는 시나리오였다. 아본시마 티알치로ㅠㅠㅠㅠ